(문화칼럼)방송국놈들이 청년미래를 박살 내고 있다.1

‘애 딸린 이혼녀에 구애하는 미남총각’

최근 5년 사이 ‘이혼녀와 미남총각 연애(이하 이총애)’ 드라마가 부쩍 늘었다.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한 시즌에 투입되는 자본은 수십~수백억 원. 타킷층에 적극 소구해야 본전 뽑는다. 여전히 미디어를 소비하는 계층이 ‘이총애’를 소비해주는 층일 테다.

그렇지만, 선을 넘었다. 지상파 방송허가는 만만하게 내 주지 않는다. 한 나라의 전파는 공공재다. KBS(한국방송공사), MBC(문화방송재단)는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다(몰랐지?). JTBC나 TV조선 등 종편도 국가로부터 까다로운 심사와 정기 허가를 받는다. 건전한 콘텐츠를 유통하는 사회적 책임이 법적으로 있다.

물론 요즘 드라마는 지상파며 OTT며 유튜브며 매체를 넘나든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영화 드라마 등 픽션(Fiction)은 그럴듯하게 현실인 듯 시청자를 속이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최고 출산율 꼴찌인 건 이미 상식이다. 동시에 낙태율도 세계최고다. 태어나야 할 영아들을 살인하고 출산율이 꼴찌라니, 허망한 출산 걱정, 잔인한 사람들 아닌가? 우리는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왜 이 지경씩 됐나.

이런 풍조에 필자는 ‘애 딸린 이혼녀에 구애하는 미남총각(이하 이애총)’류 드라마도 책임이 있다고 묻는다. 총각은 처녀와 결혼해야 등가가 맞는다. 아무리 잘난 이혼녀에게 제 아들을 장가보낼 엄마(여성)은 희귀하다.

요즘 ‘퐁퐁남(실컷 연애를 즐긴 여성에게 늦깍이 장가드는 것)’이나 ‘마삼통(미혼녀 마이너스 한도 삼천만 원 통장 탕진 후 결혼 빚탕감)’이 2030 남성에게 거의 상식처럼 인식되는 풍조도 거세진다. 결혼하면 남성만 손해라는 거다. 그러니 0에 수렴하는 성혼율이 출산 0을 견인한다.

이애총 장르에서 (미남)총각은 애 딸린 미혼녀에 무한 구애를 하고 잘 사귀던 (미녀)처녀(미성혼 여성)를 버리길 마다하지 않는다. (못생긴 총각은 아예 출연조차 못한다. 미남 옆에서 거드는 조연 출연이면 다행이다. 그런데 이혼녀에 개그 여성친구는 꼭 있다) 억울한 처녀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온전한 처녀총각 성혼이 한 커플 박살 나는 셈이다. 그 커플의 결과일 출산아들도 세상에 태어날 미래가 날아가 버린다.

이별‘된’ 처녀가 다른 총각을 만나 결혼이나 하면 다행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거기까지 배려해 주지 않는다. 이혼녀가 총각을 만나 승리로 거머쥠으로 마친다. 그걸 바라는 시청자층이 누군지는 각 가정을 돌아보면 안다. (4050 엄마들이 그렇게 시청한다. 남편 지못미…)

국내 드라마의 소비층도 여성, 제작진도 작가는 거의 여성이다. 그래, 드라마는 여성의 시장으로 놔두자. 하기엔 시장이 너무 크다. 한류와 OTT를 타고 글로벌로 나간다. 내가 외국인이라면 ‘저 예쁜 처녀 애인을 두고 굳이 왜?’라고 한국에 대단한 의구심을 가질 것 같다. 이어 한국의 보이그룹을 ‘게이그룹’이라고 여기는 주장에 동조할 수도 있다. ‘아! 한국은 성별을 포기했구나…’라고.

이혼과 섹스가 빈번한 미드 ‘섹스앤더시티’도 ‘상호호혜’ 주의가 있다. 서로 동등하게 만나고 이별에 책임을 지는 것. 우리 드라마엔 ‘남성의 구애와 헌신’만 남았다.

미사일만 적국을 파괴하지 않는다. 세련된 전쟁은 ‘프로파간다(문화전쟁)’다. 우리를 시기한 적국이 정상적인 결혼을 방해하고, 미래 장병의 탄생을 막는다면 이건 이미 전쟁에서 우리가 스스로 허물어지나..라는 염려도 해본다.

국뽕과 철 지난 이념에 기댄 한국영화가 박살나고 있다. 실패할 게 뻔한 그 류에 누가 수십 수백억 원씩 투자하는 지, 이쯤 되면 신념이다. 본인들 신념이 그렇다고, 시류가 그렇다고, 그걸 볼모로 기성 기득권 세대가 청년들 미래는 망치지 말자.

안 그래도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 섬멸하기 직전이다. 그전까진 지금 이 순간 청년들이 온전하게 살아볼 여지는 남겨줘야지 않나. 한국 드라마, 그 소재만 복붙하면 천벌 받는다.